라이프로그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 후기 무대

한줄 요약: 강수진의 추억팔이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으로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이 레나토 자넬라 안무의 <마타 하리>라는 것입니다. 강수진 감독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아직 코르 드 발레 등급일 때 주역의 기회를 얻었던 작품이거든요. 감이 오시죠? 1987년 입단 이후 군무에만 머물다가 입단 7년차인 1993년에 겨우 주역으로 데뷔하게 된 뒤, 당시 레나토 자넬라가 새롭게 안무해 초연한 <마타 하리>에도 주역으로 발탁되었으니 강수진 감독에게 있어 이 작품이 얼마나 애틋하겠어요. 강수진 감독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작품이어서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티앙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가 그랬고 기타 등등 강수진 감독이 가져온 모든 작품이 그랬듯이요.

 좋은 작품이라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강수진의 평전인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싶습니다>만 봐도 ‘프롤로그의 미숙한 처리와 음악 선곡의 실패 등이 지적되면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이 작품이 몇 번 재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10년간 상연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레퍼토리에 남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넬라는 빈 국립 발레단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이 작품을 올렸으나, 퇴임 이후 상연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좋은 작품이었다면 당연히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널리 상연되고 있고 자넬라와 인연이 없는 발레단에서도 올리고 있었겠죠? 

 2018년 신작이 이 <마타 하리>라는 소식을 듣자 기가 찼습니다. 이야, 하다하다 너무하는구나. 국립발레단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아시아 지부로 만들 거면 작품이나 좀 제대로 된 것을 가져오지 본인이 주역했던 작품이라고 고리짝에 처박힌 작품을 발굴하냐... 슈투트가르트를 시골 발레단이라고 놀리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가 있는 발레단이라 좋은 작품을 많이 올리거든요. 사실 발레 관객들이 강수진의 커넥션을 기대한 건 존 크랑코의 <오네긴>이라던가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 같은 작품 아닙니까. 하다못해 <라 실피드>라도... 아니면 좋은 작품인지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데이비드 빈틀리의 <에드워드 2세>가 궁금하니까 그거라도... 그런데 현실은 뭐 마타 하리요? 마타 하리가 죽은지 올해도 아니고 ‘작년에’ 100주년이 되었다고요? 

 이 작품은 주인공인 마타 하리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셜록 홈즈를 읽고 탐정의 세계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같이 읽었던 추리와 미스터리 책들에 마타 하리가 여러 번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춤을 추면서 기밀을 빼냈고, 심지어는 이중간첩이었다는 설명만으로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마타 하리가 유능한 스파이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매력적인 인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마타 하리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다면 멋진 간첩으로 그릴 수도 있고 관능적인 무희로 그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레나토 자넬라의 <마타 하리> 속의 마타 하리는 주제도 모르고 발레단 들어가려다 이도저도 안돼서 망하는 여자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마타 하리는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에 합류하고 싶어 매니저를 통해 의사를 타진하고 결과를 손꼽아 기다리는 한편 니진스키를 유혹하기까지 합니다. 이 내용이 여러 장면에 걸쳐 나오고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까지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마타 하리가 발레 뤼스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발레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스트립에 가까운 춤을 춘 마타 하리가 발레 뤼스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마타 하리가 발레리나로서의 활동을 실제로 얼마나 깊이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었나 큰 의문이 듭니다. 무용수로서의 마타 하리를 다루고 싶었다면 발레리나에 대한 꿈을 확대해석해서 억지로 발레와의 접점을 키울 것이 아니라, 그녀가 보인 춤을 발레로서 아름답게 안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품의 안무는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춤곡으로 적합한 곡이 아니에요. 정말 음악성이 뛰어난 안무가가 안무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게 자넬라는 아닙니다. 음악과 춤이 따로 놀고 어떠한 인상도 남기지 못합니다. 마타 하리가 선보이는 일곱 베일의 춤은 안무의 하이라이트로서 관객의 기억에 남아야 할 부분인데 그냥 베일을 계속 집어던지다가 금세 끝납니다. 게다가 음악을 장면에 맞추어 편집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해 극의 흐름과 구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장면을 맞춰야 하니까요. 

 이 작품은 작년에 상연된 크리스티앙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입니다.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며 주인공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려는 점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안무와 무대장치로 구구절절 설명해주는 슈푹과는 달리 자넬라는 대부분 춤으로 표현합니다. 문제는 무대 위를 보는 것만으로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안나> 보고 설명충이라고 욕했더니 이번에는 관객이 이해하든 말든 신경도 안쓰네요.

 주요 솔리스트만 꼽아도 마타 하리, 남편, 연인, 공연 기획자, 스폰서, 친구, 프랑스 장교, 독일 장교, 니진스키, 카르사비나, 디아길레프, 신예 무용수까지 12명이나 됩니다. 마타 하리의 삶을 그리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인물이 나와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심지어 의상이나 분장을 통해 딱 보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는 니진스키, 카르사비나, 디아길레프, 콜레트(신예 무용수)를 제외한 남자 출연자는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나옵니다. 누가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얼굴을 잘 구별해야 하고 그 각각의 무용수들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관객이 몇 명이나 될까요? 1막은 흐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데, 2막은 등장인물이 프랑스군인지 독일군인지 구별도 안 가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의상의 색이라도 다르게 했다면 구별이라도 갔을 텐데 2막에서는 1막과 다른 의상을 입더라고요. 시놉시스를 봐도 등장인물이 모두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라두는 누구였고 루소는 또 누구였나 인물 소개를 틈틈이 들여다봐야 어떤 사람인지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니 장면 하나하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마타 하리라는 사람의 심리조차 희미해집니다. 마타 하리는 남편, 젊은 군인(마슬로프와 1인 2역인 듯), 스폰서, 연인 마슬로프 이렇게 여러 인물의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프랑스 장교와 독일 장교와도 함께 춤을 추는데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잘 파악이 안 됩니다. 마타 하리가 독일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하자 유대인이었던 공연 기획자는 독일인들과의 관계를 지원할 수 없다며 그녀와 결별하는데, 이 결별의 이유를 무대만 보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 장교는 마타 하리의 정보가 별다른 값어치가 없자 프랑스 장교에게 마타 하리가 이중 스파이였다는 것을 폭로합니다. 이것 역시 갑자기 일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 마타 하리는 마슬로프만을 사랑한다는데, 그냥 시놉시스가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입니다. 

 국립발레단은 자넬라의 <마타 하리>나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를 ‘드라마 발레’라고 포장하며 강수진의 특기였던 드라마 발레를 국립발레단에 가져온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드라마 발레’ 또는 ‘드라마틱 발레’에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통용되는 의미로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감정이 표현되는 발레라고 할 수 있겠지요. 크랑코의 <오네긴>이나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작으로 꼽히고요. 안나 카레니나의 일생을 설명하느라 바쁜 <안나 카레니나>나 누군지도 파악이 안 되는 수많은 무용수 사이를 오가며 춤추기 바쁜 <마타 하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못 느꼈습니다. 오히려 강수진 감독 부임 전에 올렸던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이 드라마 발레라는 분류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립발레단 측은 이 작품이 국립발레단만을 위해 다시 안무되었다고 강조를 거듭하고 있지만, 작품의 시놉시스가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에 소개된 초연 당시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춤 동작 그 자체는 바꾸었을지언정 작품의 본질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안무만 새로 했다고 새로운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잘 봐줘야 개작 수준으로 보입니다. 

 애초부터 강수진 감독의 개인적인 추억을 되새기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본인이 주역했던 영상이나 보시지. 강수진 감독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한 국립발레단은 영원히 이런 작품을 춤춰야만 하겠죠.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가 입은 <세헤라자데> 의상이 생겼으니 그냥 그거나 올려주면 좋겠는데, 강수진 감독이 해본 적 없는 작품이니까 어렵겠죠? 

 안 좋은 공연을 보게 되면 안 좋다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생기다 보니 아무래도 좋은 리뷰보다는 안 좋은 리뷰를 먼저 쓰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리뷰를 썼던 <안나 카레니나> 이후에도 좋은 공연 많이 봤는데... 2월에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오네긴> 본 것도 자랑하고 싶은데... 좋은 공연 후기도 일기장에 잘 써놓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꼭 정리해서 올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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