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해외 발레단 내한 공연 티켓 가격과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극장 <백조의 호수> 공연 무대

 2012년 ABT와 마린스키 내한 이후 올해까지 이렇다 할 큰 발레단의 내한공연이 없었습니다. 원래부터 유명 발레단 내한공연이 드문 것이었다면 한국 같은 변방은 원래 안 오는 거구나~ 라고 받아들일 텐데 한국에도 볼쇼이, 마린스키, 로열 등등이 몇년 간격으로 내한했던 시절이 있는지라 문화 인프라가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죠.
 2012년이 어떤 마일스톤이 되는 해인 것이, 한국인 무용가가 수석으로 활동하는 단체 중 세계적인 발레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단체가 내한했던 해라는 점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ABT에는 서희, 마린스키에는 김기민이 있으니 모객도 더 쉬울 것이고, 앞으로 이들의 공연을 국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꿈이었죠.
 이 꿈은 ABT <지젤> 공연의 티켓 가격이 발표되면서 산산이 깨지고 맙니다. 기존에 VIP, R, S, A, B, C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티켓 등급에 ‘프레지던트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며 40만원을 책정한 겁니다. 이 ‘사건’은 예술의전당 정책까지 바꾸어버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칩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45만원을 받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필 공연 R석이 45만원이었죠. 하지만 베를린 필은 현지에서도 제일 좋은 자리가 290유로(2017년 11월 현재 약 38만원)입니다. 그리고 베를린 필은 수요가 있어요. 45만원이라도 매진되어서 못 구합니다. 한편 ABT는 2018년 케네디 센터에서 올라가는 <휩트 크림>의 제일 좋은 자리가 249달러(2017년 11월 현재 약 28만원)네요. 투어 가격을 비교하면, 2014년 일본 공연 최고가가 22,000엔(2017년 11월 현재 약 22만원)이고, 2018년 홍콩 공연 최고가가 1,080 HKD(2017년 11월 현재 약 16만원)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기존의 ‘VIP석’이라는 명칭을 넘은 ‘프레지던트석’이라는 문구를 붙인 것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측의 ‘요청’으로 ‘프레지던트석’이라는 명칭은 ‘VIP석’으로 변경되었지만, 이후 예술의전당은 VIP석이라는 명칭을 없애고 최고 등급을 R석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가격 책정 덕분에 ABT 내한공연은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오페라극장 객석이 그렇게 텅 빈 공연은 그때 처음 보았고, 초대권 좌석이 아닌데도 오페라극장 중앙블럭 1열이 비어있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ABT도 그런 텅 빈 객석을 두고 공연한 적이 손에 꼽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도 열과 성을 다해 공연하는 모습에 더 열심히 박수를 치게 되었어요. 하지만 망한 공연은 망한 공연... 앞으로 ABT의 내한을 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ABT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시 내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 있었던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은 큰 잡음 없이 지나갔습니다. VIP석 27만원도 적절한 가격이라고 하기 어렵고, 첫날 공연 1, 2층이 기업 단관으로 선점되는 등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프레지던트석 40만원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아니었죠. 물론 공연 내용도 훌륭했고요.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해외 발레단의 내한공연이라는 시장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 것 같습니다.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내한이 전무한 것은 물론, 가끔 오는 규모가 작은 발레단들의 공연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는 일이 자꾸 일어났습니다. 2014년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VIP석이 30만원이었는데, 사실상 관객이 보러 오라고 올리는 공연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CBS 창사 60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초대권을 받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비싼 티켓을 받았어!’라고 뿌듯해하게 하려는 가격 책정이었겠지요. 하지만 이걸 잘 모르고 아무 발레단이나 불러서 30만원 받으면 공연이 올라가는 줄 아는 기획사가 있었는지, 이듬해 2015년에 보스턴 발레단 내한으로 VIP석 30만원을 책정했다가 공연이 아예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한정 세계 최고 발레리나인 강수진의 존재는 이런 상황에 딱히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강수진이 나오기만 하면 표는 팔리니까, 크레디아는 강수진이 소속되어 있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2-3년 간격으로 부르며 배짱 가격을 매겼죠. 2012년 <까멜리아 레이디>(이 작품 이렇게 부르기 너무 싫은데 춘희라고 하면 일본식이고. 동백 아가씨라 할 수도 없고. ㅠㅠ)는 VIP석 25만원, 2015년 <오네긴>은 R석 28만원이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현지에서는 제일 비싼 티켓이 139유로(2017년 11월 현재 약 18만원)이고, 2015년 <오네긴> 일본 투어는 최고가가 19,000엔(2017년 11월 현재 약 19만원)이네요.  
 그래도 이 공연들에서는 최소한 작품다운 작품은 볼 수 있었죠. 2014년 인스부르크 발레단에 강수진이 객연한 <나비부인>은 20만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링크가 없어졌지만 인스부르크 현지에서 공연할 때는 최고가가 45유로(2014년 당시 약 6만5천원)였습니다. 한국 공연에서 두 번째로 싼 티켓보다 저렴한 가격입니다. 미안하지만 인스부르크 발레단의 수준도, 작품의 수준도 20만원을 받을 수준이 아니었어요. 이런 때는 그동안 공연 후기를 제대로 적지 않았던 것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나비부인>을 보고 나서의 충격과 분노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강수진 단장은 그 작품을 국립발레단에 올리려고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안나 카레니나> 예고편이었네요. <안나 카레니나> 후기는 꼭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깁니다...
 해외 발레단 공연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는 동안 국내 발레단 공연은 어땠을까요. 이 역시 다른 의미로 비정상적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예술의전당 공연 기준으로 최고가를 10~12만원선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국립발레단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최고가 8~10만원을 유지하다 올해 6월에 <스파르타쿠스> 최고가를 4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책정합니다. 뒤이어 11월의 <안나 카레니나>는 신작인데도 불과 5만원에 판매하고요. 두 공연이 각각 ‘대한민국발레축제’와 ‘평창 성공 기원 공연’으로서 국고 지원을 꽤 받았는데, 지원금을 공연 퀄리티를 높이는 데 사용하기 보다는 티켓 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보여 우려가 됩니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유니버설발레단 티켓이 비싼 것으로 보이거든요. 실질적으로는 국립발레단 티켓이 저렴한 건데요. 단기적으로 국립발레단 공연의 접근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발레 관객이 늘어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고 봐야 알겠죠.

 이런 상황 속에서 마린스키발레단이 내한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발레팬 모두가 기뻐했죠. 작품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가 작년에 국립발레단이 프롤로그 포함한 프로덕션을 올린 참인데! 그리고 왕자 비중이 적어서 우리가 기대하는 김기민의 활약을 만끽할 수 없을 텐데! 우린 <라 바야데르>가 좋아! 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5년만의 내한이라니 일단 감지덕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라... 얼마 뒤에 작품이 <백조의 호수>로 변경됩니다. 아 지금 바야데르 운운할 때가 아니구나. 꼭 사골국같은 백조의 호수를 해야 하나...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사실은 그걸 안타까워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이긴 한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이 아니라 연해주에 있는 분관, 프리모스키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공지되었던 김기민, 쉬클랴로프, 스코릭, 파블렌코가 아니라 김기민과 테료쉬키나, 그리고 프리모스키 무용수들이 주역을 맡는다는 겁니다. 어쩐지, 파블렌코는 노조 활동하다 찍혀서 투어에 거의 나오지도 못한다던데...
 프리모스키 극장 내한, 좋습니다. 프리모스키도 마린스키 극장인거 맞습니다. 분관이니까요. 개런티라던가 일정 등의 문제로 마린스키 본관을 부를 수 없다면 프리모스키라도 불러서 김기민 씨가 주역하는 모습을 보면 좋죠. 하지만 이 공연의 타이틀은 ‘마린스키 극장 (Primorsky Stage) 내한공연’ 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일반 관객이 프리모스키가 뭔지 어떻게 아나요? 프리마랑 비슷한 건가? 그럼 최고라는 뜻인가? 하고 넘기겠지요. 
 이 기사에 따르면 기획사 측은 “"올해부터 게르기예프가 경영 정책 일환으로 해외 공연은 마린스키 4극장이 주도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며 "애초 1극장 소속 마린스키 발레단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이번 내한공연의 무용수 구성도 게르기예프가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네요. 와, 게르기에프 정말 너무합니다. 마린스키 본관이 미국 가서는 포킨 빌에 <라 바야데르>까지 올리고, 중국에서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올리면서, 왜 유독 한국에는 못 보내겠다는 건가요? 미국이랑은 사이도 안 좋으면서 마린스키 본관을 보내고!!! 김기민의 나라 한국에는 왜!!! 프리모스키를 보낸다는 것인가!!!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관계자님, 당장 게르기에프에게 엄중하게 따져 주십시오. 우리나라에 프리모스키를 보낼 거면 경영 정책을 지켜서 (미국은 이미 끝났고) 중국에도 프리모스키를 보내라고요!!!!!
 그리고 같은 기사에 따르면 “"군무진은 (1극장 소속) 마린스키 발레단과 (4극장 소속) 프리모스키 스테이지가 함께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마린스키 극장의 바쁜 일정으로 상세 캐스팅을 전달받지 못해 몇 명씩 나눠서 올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는데 게르기에프...약속을 안 지킨 건가요? 아래 캐스팅표에는 마린스키 본관 무용수가 김기민 테료쉬키나 외에는 안 보이는데...??? 제가 마린스키 본관 무용수를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혹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티켓 가격이... 2012년에 마린스키 본극장이 왔을 때 최고가가 27만원이었는데, 올해 프리모스키는 28만원이었습니다. 현지 가격을 비교하면, 마린스키 본관 <백조의 호수> 공연 정가는 3500~10000루블(6만6천원~19만원), 프리모스키가 100~3750루블(2천원~7만원)입니다. 중간 가격이라 할 수 있는 3층 앞자리 가격을 비교하면 프리모스키 내한공연이 16만원, 마린스키 본관이 5500루블(10만5천원), 프리모스키가 900루블(약 만7천원).
 김기민 씨도 테료쉬키나도 너무너무 좋아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었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2회 공연 모두 보고 싶었지만, 프리모스키 공연에 도저히 28만원은 못 내겠더라고요. 김기민과 테료쉬키나의 공연에 28만원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팔아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우겨우 자신과 타협해서 23만원짜리 좌석에서 한 번만 봤습니다. 저에게 돈이 많다고 할지라도 돈을 더 내고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럼 얼마였다면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했을까요? ABT 40만원 이후 군소 발레단도 30만원씩 받는 상황이라 적정 가격이라는 개념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도 제 감각으로는 R석 15만원 정도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정도였다면 테-김 공연 두 번 보고, 프리모스키 주역 회차도 호기심에 한번 봤을 듯해요.

 이제야 겨우 실제 공연 얘기를 할 수가 있네요. 테료쉬키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완벽합니다. 너무 완벽해서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어요. 흑조는 레벨이 달라요. 오딜이 악의 여왕이고, 로트바르트는 그 조력자 정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매혹적이고 섹시하고 자신만만해서, 왕자는 그녀를 본 순간 이미 그녀의 마법에 넘어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언뜻언뜻 사악할 정도로 유혹적인 미소를 지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의 야광봉을 흔들었습니다.
 김기민 씨는 날더군요. 바리에이션에서 부웅 날아오르는 것을 멍하니 보면서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하다가 이게 김기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차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서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 봤는데, 동영상 속의 모습도 대단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느낌이 한차원 더 다릅니다. ‘점프를 한다’가 아니라 그냥 날아요.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3막에 점프 하나 나오는 것마저 날아오릅니다. 지금까지 평범한 인간인 왕자가 어떻게 악마 로트바르트를 이기냐 생각했는데 이렇게 날 수 있는 왕자라면 로트바르트 따위는 맨손으로 죽일 수 있겠다고 납득해 버렸습니다.
 발레단 자체는 평이했습니다. 어차피 마린스키 본관의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고요. 주역에 시선이 가니 나머지는 제 역할만 하면 특별히 거슬릴 게 없었습니다. 다만 무대 바닥을 대체 어디서 준비한 건지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 있는 곳에서 발을 떼는 듯한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렸어요. 일부 무용수들이 토슈즈에 송진을 너무 많이 발랐나 생각했는데, 그렇다기엔 공연 내내 그런 소리가 계속되더라고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뭔가 뿌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이런 상황을 잘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악은... 국내 오케스트라는 금관이 고질적인 문제라, 2막에 바람 빠진 나팔소리가 울리니 나팔수 역 하는 사람이 창피하겠다 생각되었고요... 마주르카는 왜 그렇게 빠르게 연주한 걸까요? 너무너무너무 빨라서 객석에 앉아있는 제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찬양하는 것으로 5천자를 빽빽이 채워도 모자랄 후기에 가격이니 프리모스키니 어쩌고 저쩌고 덕지덕지 쓰자니 안타깝습니다. 프리모스키와 5년간 계약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지금 링크를 못 찾겠네요. 표가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호응도 너무 좋았고 골수 발레 팬이 아닌데도 김기민 보러 갔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여요. 이제 유명 발레단 내한은 포기했고요. 꼭 보고 싶으면 그냥 일본 공연이나 현지 가서 볼게요. 김기민 씨 주역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하겠으니 다만 가격이라도 좀 정상적인 가격으로 올려 주세요. 환영하며 출석도장 찍겠습니다.

 아래는 커튼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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