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유니버설] 지젤 무대

2008.3.22

지젤: 안지은
알브레히트: 황재원
힐라리온: 진헌재
미르타: 요아나 바실레스쿠
페전트 파드되: 손유희, 민홍일

 안지은 씨의 지젤 데뷔 무대가 기대되기도 했고, 황재원 씨도 좋아서 이번 공연을 선택했다.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 우울한 1막을 보고 싶지 않아 관람을 관둘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힘내서 보기로 했다.
 안지은 씨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지젤을 만들어냈다. 건강하고 활기찬,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생기있는 시골 처녀. 왠지 마리아 알렉산드로바가 떠올랐다. 연인에게는 수줍어하지만, 바틸드에게 자기소개할 때는 활기차게 이야기했다. 1막 초반에 친구들과 알브레히트와 춤출 때 한번 멈추는 장면에서 보통 힘들어하거나 아파하는데 안지은 씨는 사랑의 행복감을 표현했다. 광란 장면에서는 슬픔을 못이겼다기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미쳐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정신을 놓은 것처럼 흐리멍텅한 눈동자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추는 무용수는 본 적이 없다. 2막 마지막에서는 알브레히트에 대한 사랑과 함께 빨리 삶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듯 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이번 주역 중 테크닉적으로 가장 뛰어난 무용수는 안지은 씨가 아닐까. 1막 바리아시옹은 약간 어렵게 바꾸어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2막에 들어있는 어려운 안무도 쉽게 해냈다. 천천히 다리를 올리는 아라베스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천히 올렸고, 알브레히트의 손을 잡고 허리를 완전히 젖히는 동작도 훌륭했다. 요정처럼 사뿐하고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것도 좋았다.

 황재원 씨의 알브레히트는 지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윌프리드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을에 남았다. 평민들의 삶을 신기해하고, 지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을 처녀들에게 춤을 선보이는 착한 알브레히트다. 지젤의 어머니에게 인사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우아함이 드러난다. 힐라리온에게 정체를 폭로당하자 근심에 찬 표정을 짓다가도 지젤이 다가오면 웃으며 아니라고 하고...순수하고 착하다.
 이분의 테크닉이야 여러번 봤듯이 굉장히 안정되어 있다. 착지할 때 쿵쿵 소리가 나는 일도 좀처럼 없다. 지젤은 특히 2막에서 서포트가 중요한데, 파트너를 사뿐사뿐 내려놓는 것이 과연 황재원 씨 다웠다. 12월 호두 이후 세달 만에 보는건데 그새 좀더 멋져지신 것 같다. 살이 빠지셨나? 키도 더 커보이고 프로포션이 더 좋아보인다.
 힐라리온의 진헌재 씨는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순수한 사랑을 보였다. 그 마음이 알브레히트를 만나 변질되고, 스토커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페전트 파드되는 민홍일, 손유희 씨. 두분 다 나무랄 데 없는 테크닉이었다. 특히 손유희 씨는 춤추는 것의 행복감이 온몸에 나타나는 기분 좋은 춤을 보여줬다.
 오랜만에 전체공개로 올리는 국내 공연 감상이다. 그만큼 나무랄 데 없이 만족스러웠다. 안지은 씨는 자신만의 지젤을 만들어냈고, 이 개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모두 똑같이 수줍고 연약하면서도 춤추는건 좋아하는 지젤은 재미없지 않은가. 유니버설의 경우 개성있는 무용수가 드물어 아쉬웠는데, 자신의 춤이 있고 테크닉까지 뛰어나서 앞으로가 정말 기대된다. 임혜경 씨와 함께 앞으로 챙겨보고 싶은 무용수다. ^^ 알브레히트의 경우 싫어하는 캐릭터 중 하나지만 황재원 씨는 순수하고 착한 알브레히트를 보여주어 이 비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황재원 씨는 뭐 예전부터 좋아했고. ^^ KBS에서 찍어갔다는데 두고두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마임에 붙는 자막. 그러나 무대 맨 꼭대기에 자막 창이 있어서, 3층이라면 모를까 1층에서 자막을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자막을 보려면 춤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그러느니 그냥 춤을 보는게 낫다. 사실 문훈숙 단장님이 공연 전에 마임 해설을 해주시기 때문에 초보자라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덧글

  • Eclipsia 2008/03/23 03:12 # 답글

    아아..T-T 무지하게 부럽습니다~~~~ T-T//
    멋진 공연이었던 것 같네요~ :) 무슨 힘든 일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다시 기운 내시길~ :)
  • 정익 2008/03/23 12:44 # 삭제 답글

    앗 저와 같은 공연을 보셨군요:)
    감상 잘읽었습니다.
  • Al 2008/03/23 22:58 # 삭제 답글

    안지은씨의 건강한 성격과 단단한 실력이 잘 드러난 공연이었던 모양이에요.
  • 우발사마 2008/03/24 13:23 # 답글

    저는 황혜민씨 공연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특히 2막에서 정령, 요정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황혜민씨는 탁월했던것 같아요. 처음 황혜민 - 엄재용 무대를 봤는데 (매번 강예나만 봤거든요 ^^) 정말 놀라웠다고 하고 싶은 공연이었어요. 임혜경 무대 너무 보고 싶었는데 미리 스케쥴이 있어서 아쉬웠네요.
  • reina 2008/03/27 13:03 # 답글

    Eclipsia/ 감사해요..^^ 미국에도 좋은 공연이 많으니 보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AI/ 춘향 때보다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 기뻤어요^^

    우발사마/ 황혜민 씨 요즘에 굉장히 발전한 모습이에요! 요즘 UBC 단원들의 발전기인듯 ^^
  • lvenusl 2008/04/28 23:59 # 삭제 답글

    흐 안지은입니다. 검색중에 글읽고 넘 감사해요... 계속 발전하는 발레리나 되겠습니다. ^^
  • reina 2008/05/01 16:18 # 답글

    lvenusl/ 와 직접 방문하고 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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