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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미래 안내말씀/잡담

블로그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기본 폰트 크기와 줄 설정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 글은 글자 크기가 들쭉날쭉한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당장 모두 다듬기 어려우니 당분간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공연 감상을 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간단한 감상은 트위터에 남기고 있고요.
하지만 SNS는 흘러가는 매체라 검색하고 분류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듬고 정돈한 감상은 블로그에 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 어느 블로그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가 고민이에요.
긴 시간동안 사용하던 이 이글루스는 로딩이 가볍고 구글 검색에 효과적이고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다 발레 글도 올려보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는 아무래도 국내 포털이기에 접근성이 좋죠.
네이버 블로그를 오래 사용해서 검색 노출도도 좋았는데... 한동안 안 썼더니 노출도가 엄청나게 떨어졌네요. 열심히 써야 하는 것인지...
당분간 고민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뜸해진지 오래인데 잊지 않고 들러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요.

국립발레단 <마타 하리> 공연 후기 무대

한줄 요약: 강수진의 추억팔이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으로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작품이 레나토 자넬라 안무의 <마타 하리>라는 것입니다. 강수진 감독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아직 코르 드 발레 등급일 때 주역의 기회를 얻었던 작품이거든요. 감이 오시죠? 1987년 입단 이후 군무에만 머물다가 입단 7년차인 1993년에 겨우 주역으로 데뷔하게 된 뒤, 당시 레나토 자넬라가 새롭게 안무해 초연한 <마타 하리>에도 주역으로 발탁되었으니 강수진 감독에게 있어 이 작품이 얼마나 애틋하겠어요. 강수진 감독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작품이어서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티앙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가 그랬고 기타 등등 강수진 감독이 가져온 모든 작품이 그랬듯이요.

 좋은 작품이라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강수진의 평전인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싶습니다>만 봐도 ‘프롤로그의 미숙한 처리와 음악 선곡의 실패 등이 지적되면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이 작품이 몇 번 재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10년간 상연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레퍼토리에 남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넬라는 빈 국립 발레단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이 작품을 올렸으나, 퇴임 이후 상연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좋은 작품이었다면 당연히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널리 상연되고 있고 자넬라와 인연이 없는 발레단에서도 올리고 있었겠죠? 

 2018년 신작이 이 <마타 하리>라는 소식을 듣자 기가 찼습니다. 이야, 하다하다 너무하는구나. 국립발레단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아시아 지부로 만들 거면 작품이나 좀 제대로 된 것을 가져오지 본인이 주역했던 작품이라고 고리짝에 처박힌 작품을 발굴하냐... 슈투트가르트를 시골 발레단이라고 놀리긴 하지만 그래도 역사가 있는 발레단이라 좋은 작품을 많이 올리거든요. 사실 발레 관객들이 강수진의 커넥션을 기대한 건 존 크랑코의 <오네긴>이라던가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 같은 작품 아닙니까. 하다못해 <라 실피드>라도... 아니면 좋은 작품인지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데이비드 빈틀리의 <에드워드 2세>가 궁금하니까 그거라도... 그런데 현실은 뭐 마타 하리요? 마타 하리가 죽은지 올해도 아니고 ‘작년에’ 100주년이 되었다고요? 

 이 작품은 주인공인 마타 하리라는 인물을 다루는 방식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셜록 홈즈를 읽고 탐정의 세계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같이 읽었던 추리와 미스터리 책들에 마타 하리가 여러 번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춤을 추면서 기밀을 빼냈고, 심지어는 이중간첩이었다는 설명만으로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마타 하리가 유능한 스파이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매력적인 인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마타 하리를 주제로 작품을 만든다면 멋진 간첩으로 그릴 수도 있고 관능적인 무희로 그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레나토 자넬라의 <마타 하리> 속의 마타 하리는 주제도 모르고 발레단 들어가려다 이도저도 안돼서 망하는 여자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마타 하리는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에 합류하고 싶어 매니저를 통해 의사를 타진하고 결과를 손꼽아 기다리는 한편 니진스키를 유혹하기까지 합니다. 이 내용이 여러 장면에 걸쳐 나오고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까지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마타 하리가 발레 뤼스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발레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스트립에 가까운 춤을 춘 마타 하리가 발레 뤼스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마타 하리가 발레리나로서의 활동을 실제로 얼마나 깊이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었나 큰 의문이 듭니다. 무용수로서의 마타 하리를 다루고 싶었다면 발레리나에 대한 꿈을 확대해석해서 억지로 발레와의 접점을 키울 것이 아니라, 그녀가 보인 춤을 발레로서 아름답게 안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품의 안무는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춤곡으로 적합한 곡이 아니에요. 정말 음악성이 뛰어난 안무가가 안무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게 자넬라는 아닙니다. 음악과 춤이 따로 놀고 어떠한 인상도 남기지 못합니다. 마타 하리가 선보이는 일곱 베일의 춤은 안무의 하이라이트로서 관객의 기억에 남아야 할 부분인데 그냥 베일을 계속 집어던지다가 금세 끝납니다. 게다가 음악을 장면에 맞추어 편집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해 극의 흐름과 구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장면을 맞춰야 하니까요. 

 이 작품은 작년에 상연된 크리스티앙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입니다.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며 주인공의 삶을 자세하게 묘사하려는 점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하지만 안무와 무대장치로 구구절절 설명해주는 슈푹과는 달리 자넬라는 대부분 춤으로 표현합니다. 문제는 무대 위를 보는 것만으로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안나> 보고 설명충이라고 욕했더니 이번에는 관객이 이해하든 말든 신경도 안쓰네요.

 주요 솔리스트만 꼽아도 마타 하리, 남편, 연인, 공연 기획자, 스폰서, 친구, 프랑스 장교, 독일 장교, 니진스키, 카르사비나, 디아길레프, 신예 무용수까지 12명이나 됩니다. 마타 하리의 삶을 그리는데 이렇게까지 많은 인물이 나와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심지어 의상이나 분장을 통해 딱 보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는 니진스키, 카르사비나, 디아길레프, 콜레트(신예 무용수)를 제외한 남자 출연자는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나옵니다. 누가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얼굴을 잘 구별해야 하고 그 각각의 무용수들이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관객이 몇 명이나 될까요? 1막은 흐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데, 2막은 등장인물이 프랑스군인지 독일군인지 구별도 안 가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의상의 색이라도 다르게 했다면 구별이라도 갔을 텐데 2막에서는 1막과 다른 의상을 입더라고요. 시놉시스를 봐도 등장인물이 모두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라두는 누구였고 루소는 또 누구였나 인물 소개를 틈틈이 들여다봐야 어떤 사람인지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니 장면 하나하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마타 하리라는 사람의 심리조차 희미해집니다. 마타 하리는 남편, 젊은 군인(마슬로프와 1인 2역인 듯), 스폰서, 연인 마슬로프 이렇게 여러 인물의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프랑스 장교와 독일 장교와도 함께 춤을 추는데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잘 파악이 안 됩니다. 마타 하리가 독일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 하자 유대인이었던 공연 기획자는 독일인들과의 관계를 지원할 수 없다며 그녀와 결별하는데, 이 결별의 이유를 무대만 보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독일 장교는 마타 하리의 정보가 별다른 값어치가 없자 프랑스 장교에게 마타 하리가 이중 스파이였다는 것을 폭로합니다. 이것 역시 갑자기 일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 마타 하리는 마슬로프만을 사랑한다는데, 그냥 시놉시스가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입니다. 

 국립발레단은 자넬라의 <마타 하리>나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를 ‘드라마 발레’라고 포장하며 강수진의 특기였던 드라마 발레를 국립발레단에 가져온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드라마 발레’ 또는 ‘드라마틱 발레’에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통용되는 의미로는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감정이 표현되는 발레라고 할 수 있겠지요. 크랑코의 <오네긴>이나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작품들이 그 대표작으로 꼽히고요. 안나 카레니나의 일생을 설명하느라 바쁜 <안나 카레니나>나 누군지도 파악이 안 되는 수많은 무용수 사이를 오가며 춤추기 바쁜 <마타 하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못 느꼈습니다. 오히려 강수진 감독 부임 전에 올렸던 보리스 에이프만의 <차이코프스키>나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작품이 드라마 발레라는 분류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립발레단 측은 이 작품이 국립발레단만을 위해 다시 안무되었다고 강조를 거듭하고 있지만, 작품의 시놉시스가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에 소개된 초연 당시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춤 동작 그 자체는 바꾸었을지언정 작품의 본질은 그대로인 것입니다. 안무만 새로 했다고 새로운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잘 봐줘야 개작 수준으로 보입니다. 

 애초부터 강수진 감독의 개인적인 추억을 되새기는 것 외에 아무 의미가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냥 집에서 본인이 주역했던 영상이나 보시지. 강수진 감독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한 국립발레단은 영원히 이런 작품을 춤춰야만 하겠죠. 니진스키와 카르사비나가 입은 <세헤라자데> 의상이 생겼으니 그냥 그거나 올려주면 좋겠는데, 강수진 감독이 해본 적 없는 작품이니까 어렵겠죠? 

 안 좋은 공연을 보게 되면 안 좋다고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생기다 보니 아무래도 좋은 리뷰보다는 안 좋은 리뷰를 먼저 쓰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리뷰를 썼던 <안나 카레니나> 이후에도 좋은 공연 많이 봤는데... 2월에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오네긴> 본 것도 자랑하고 싶은데... 좋은 공연 후기도 일기장에 잘 써놓았으니 빠른 시일 내에 꼭 정리해서 올려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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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안나 카레니나> 공연 후기 무대

한줄 요약: 설명충 발레. 너무 재미없어서 첫공 보고 나머지 공연 관람 취소함.
  
<안나 카레니나>는 처음부터 기대작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강수진 단장이 가져온 레퍼토리는 거의 대부분 본인이 무용수 시절 몸담고 있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복사-붙여넣기였죠.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 마르시아 하이데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로버트 노스의 <트로이 게임> 모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레퍼토리였습니다. 이 작품들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기 전에, 본인이 있던 발레단의 아시아 지부를 만들려는 것도 아닐 텐데 딱 본인이 있던 곳에서 접하던 작품만 가져오니 레퍼토리 선정에서 상당한 게으름이 보였어요. 크리스티앙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슈푹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상임안무가로서 오래 활동한 사람입니다. 아, 친구가 전막 새로 안무했다고 작품 사주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공연 전날 프레스콜 사진이 뜨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의상이 정말 아름다워서 사진발을 잘 받더라고요. 일단 눈이 보기 좋으니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한가닥 기대를 품고 첫공을 보러 갔습니다.

아, 발레에서 이런 설명충 처음 봤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원작은 보통 상, 중, 하 3권으로 분책되는 긴 소설입니다. 주인공 안나와 남편 카레닌, 연인 브론스키 외에도 키티와 레빈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의 비중도 크지요. 보통 영화나 발레로 각색을 하면 안나에 포커스를 맞추고 키티와 레빈 정도에 비중을 주게 됩니다. 그래야 2-3시간에 이야기를 넣을 수 있겠죠. 하지만 슈푹의 목표는 소설의 충실한 재현인듯 합니다. 안나-카레닌-브론스키, 키티-레빈, 돌리-스티바까지 세 가지의 관계를 모두 표현하는데다 덤으로 벳시와 벳시의 연인에게도 분량을 챙겨줍니다. 2막 발레에 이들의 사연이 모두 채워지려다 보니 안나가 희미해집니다. 국립은 이 작품을 '드라마 발레'라고 규정하려고 하는데, 여기 드라마가 어디 있나요? 장면의 나열만 있고 안나의 드라마도 브론스키의 드라마도 없습니다.
구성뿐만 아니라 안무도 설명충입니다. 발레는 어디까지나 춤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적인 동작을 넣을 수도 있지만, 꼭 옷을 한꺼풀 벗고 우리 지금 섹스하는 거예요, 라고 구구절절 드러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사실적 동작 외의 춤이 아름답고 보기 좋은가 하면, 무슨 동작이 있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안무가 없습니다. 발레인데도 좋은 춤이 없어요.
무대장치도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판자를 엮어 만든 상자 같은 무대장치가 의자가 되기도 하고 기차가 되기도 하는데, 무대장치가 기차가 되면 배경막에 기차 영상을 띄우고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이게 기차라는 것을 굉장히 친절히 알려줍니다. 브론스키가 경마를 할 때는 배경막에 말들이 달리고요. 키티와 레빈의 결혼식도 하객들이 모이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자 이거 결혼식이야 하고 주입시켜 줍니다.
이렇게 설명이 가득한데도 이야기의 흐름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프로그램 북으로 미리 이 사람은 이 역할 저 사람은 저 역할이다 알아두지 않으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열심히 설명하는 와중에도 좋아 보이는 연출은 다 넣었습니다. 여러 가지 장치를 많이 해 두었는데 그것 하나하나에 의미가 없어요.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의 경우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즐거운 파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마그리트의 후원자가 피아노를 꽝 치며 파티를 끝내버리는 극적인 효과를 줍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왜 굳이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해야 할까요? 가수는 또 왜 굳이 무대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해야 하고요? 그냥 멋있어 보이는 것이 의도라기엔 멋있지도 않네요. 전체적으로 유럽에서 쿨하다 여겨지는 요소들을 버무리며 노이마이어 흉내를 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그냥 또 하나의 범작이었구나 생각되시겠지만, 이 작품의 최대의 단점은 따로 있습니다.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구구절절 장면 설명을 떠먹이면서 주된 등장인물은 많고 볼만한 춤도 없고 어디서 본 듯한 것만 가득... 재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전 첫공과 막공을 예매해 두었는데, 첫공의 막이 내려가자 바로 든 생각이 '아, 이걸 또 봐야 하는 건가. 시간이 아깝다.' 였습니다. 예술의전당까지 왕복 4시간에 공연 2시간, 총 6시간을 두 번 다시 이렇게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막공 캐스팅 때문에 조금 고민을 했지만 제 시간(과 돈)은 소중했기에 관람을 취소했습니다.

제가 공연 관람에 사용한 시간도 아까웠지만, 이 공연을 올리는데 쓰인 돈과 무용가들과 스태프들의 시간과 노력도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작품은 평창올림픽 기념공연으로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20억원이 어떤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돈이냐면......이건 자료 조사를 해야 하는 건데 제가 더이상 <안나 카레니나> 때문에 손가락 품을 팔기가 귀찮아졌어요...... 공식적인 출처는 나중에 심심할 때 찾기로 하고 애호가 분의 블로그를 인용해 얘기해보면, 유니버설 발레단이 <오네긴>을 가져오는 데 11억을 썼다고 해요. <오네긴>은 드라마 발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이런 작품 가져올 돈의 두 배로 노잼 설명충 작품을 가져왔네요... 그것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으로요... 이래서 국립단체장 인선이 중요합니다. 친구 작품이라 가져왔다 할지라도 작품이 좋았다면 다들 칭찬했겠죠. 하지만 취임 4년차인 지금까지 가져온 작품 중 호평 받는 것이 얼마나 있나요? <봄의 제전>은 좋게 보신 분이 많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관객 반응이 좋지 않고, 클래식을 새롭게 연출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마저 국립발레단에 어울리는 버전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2014년에 상연하겠다 발표했다가 철회한 <나비부인> 역시 <안나 카레니나>를 능가하는 망작이었고요.
계속 "평창올림픽기념공연"이니 "평창올림픽 성공기원공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안나 카레니나> 줄거리 다들 아시죠. 귀부인이 바람났다가 현타와서 자살하는 내용으로 올림픽이라는 축제의 성공을 기원해요? 예를 들어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면 악을 물리치고 왕자님과 공주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니(하이데 버전은 악을 물리쳤다는 부분이 조금 미묘하지만) 어떻게 갖다 붙일 수 있겠는데, <안나 카레니나>는 뭘 어떻게 미화해줘야 할지...... 안 그래도 올림픽 개최 과정에서 잡음이 많은데 전망이 한층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네요...
캐스팅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가 없죠. 타이틀 롤인 안나 역의 김리회 씨는 키티 역까지 두 배역, 박슬기 씨는 키티 역에 더해 돌리 역까지 세 배역을 날짜별로 번갈아가며 췄습니다. 남자주인공 브론스키 역의 이재우, 박종석 씨는 각각 카레닌 역과 스티바 역을 번갈아 췄고요. 김명규A씨는 레빈, 스티바, 벳시 연인 역 세 개를 맡았습니다. 적어도 주역만이라도 한 배역에 집중하게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이렇게까지 무용수를 돌려막아야 한다면 그냥 더블 캐스팅을 할 수도 있잖아요.
국립은 벌써 몇 년째 이렇게 주역을 맡은 수석무용수가 조역 및 각종 솔리스트 역으로 매일 나오다시피 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해외 발레단에서 주역과 다른 역을 겸하는 경우는 군무 급에서 발탁된 무용수가 며칠 주역을 하고 나머지 회차는 군무나 솔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석무용수가 주역과 조역, 솔리스트 역을 같이 맡는다면 공연 횟수가 10회 이상 되어서 며칠 간격으로 나오는 경우고요. 이렇게 매일매일 주조역으로 혹사시키는 경우는 국립하고 유비씨밖에 못 보았네요.(다만 유비씨는 국립과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박슬기 씨가 뭘 시키든 잘 해내니까 믿고 일을 몰아주는 것인지... 공연 횟수가 (해외에 비해) 많지도 않은데, 이렇게 일부 수석무용수에게 여러 역을 주면 솔리스트 층의 무용수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발레단에 랭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수석은 주역을 시키고 솔리스트는 솔로를 시켜야죠.
무용가들이 작품을 어떻게 소화해냈는지에 대해서 안 썼는데, 쓸 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작품이 어느 정도 수준은 되어야 무용가들이 뭘 잘했네 못했네 얘기를 하죠... 누가 했어도 못 살릴 작품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무용가들에게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결론은 국립 레퍼토리에 믿고 거르는 작품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재연된다면 아마 안 볼 것 같네요. 웬만하면 이 글 보시는 여러분도 보지 마세요. 그 돈으로 차라리 좋은 DVD 하나 사시거나 좀 더 보태서 다른 좋은 작품을 보세요.
이 작품은 커튼콜 사진 보기도 싫으니 사진은 패스합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 오픈리허설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오네긴> 오픈리허설에 다녀왔습니다. 
<오네긴>은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오픈리허설도 꼭 가고 싶었는데, 운좋게도 UBC 이벤트와 레페토 이벤트 둘 다 당첨되어 2회차 모두 참석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 제일 관심이 갔던 것은 뉴페이스인 나탈리아 쿠쉬 씨였는데요, 오네긴과의 파드되가 아닌 그레민 알렉산더 세이트칼리예프 씨와의 파드되를 보여주셨습니다. 
유지연 부예술감독님이 라인이 아름답고 감정 표현이 탁월한 무용수라고 칭찬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레민과 부부로서의 다정한 사랑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춤이었습니다. 
오네긴 파트너인 이동탁 씨와의 파드되를 보고 싶었는데 이동탁 씨의 부상으로 캐스팅이 바뀌게 되었네요. 
그래서 그레민과의 파드되를 보여주신 모양입니다. 
본 공연에서는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리허설에서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유비씨가 내년에 또 <오네긴>을 올려서 이 분의 타티아나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유비씨 최고의 렌스키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씨! 이분의 렌스키는 책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싱크로율 100%입니다.
한상이 씨의 올가는 이번이 데뷔. 사실 타티아나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올가의 사랑스러움도 잘 표현하시더라고요!

홍향기 씨의 올가는 2013년에 볼 기회가 없었는데 생각대로 활기차고 귀여운 연기였습니다. 테크닉 하나하나 너무 정확하고요.
마밍 씨도 이번이 데뷔인데 기대됩니다.

2009년 초연 때부터 함께 추시는 강미선, 이현준 씨. 
거울 파드되의 고난도 동작을 너무 쉽게 해내시며 말그대로 행복한 꿈같은 춤을 추시더라고요. 저도 빠져들며 바라봤습니다.

렌스키역 간토지 오콤비얀바 씨도 데뷔. 결투 장면의 렌스키의 격정을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번 <오네긴>으로 은퇴하시는 황혜민, 엄재용 씨는 해외 공연 때문이신지 참석하지 않으셨어요. 본 무대가 다가오는 것이 기다려지면서도 아쉽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매번 오픈리허설이라는 좋은 이벤트를 열어 주셔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초대해주신 레페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관객이 작품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예전 오픈리허설 사진들도 링크해 봅니다.

해외 발레단 내한 공연 티켓 가격과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극장 <백조의 호수> 공연 무대

 2012년 ABT와 마린스키 내한 이후 올해까지 이렇다 할 큰 발레단의 내한공연이 없었습니다. 원래부터 유명 발레단 내한공연이 드문 것이었다면 한국 같은 변방은 원래 안 오는 거구나~ 라고 받아들일 텐데 한국에도 볼쇼이, 마린스키, 로열 등등이 몇년 간격으로 내한했던 시절이 있는지라 문화 인프라가 발전하기는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죠.
 2012년이 어떤 마일스톤이 되는 해인 것이, 한국인 무용가가 수석으로 활동하는 단체 중 세계적인 발레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단체가 내한했던 해라는 점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ABT에는 서희, 마린스키에는 김기민이 있으니 모객도 더 쉬울 것이고, 앞으로 이들의 공연을 국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꿈이었죠.
 이 꿈은 ABT <지젤> 공연의 티켓 가격이 발표되면서 산산이 깨지고 맙니다. 기존에 VIP, R, S, A, B, C 등으로 나누어져 있던 티켓 등급에 ‘프레지던트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며 40만원을 책정한 겁니다. 이 ‘사건’은 예술의전당 정책까지 바꾸어버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칩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45만원을 받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필 공연 R석이 45만원이었죠. 하지만 베를린 필은 현지에서도 제일 좋은 자리가 290유로(2017년 11월 현재 약 38만원)입니다. 그리고 베를린 필은 수요가 있어요. 45만원이라도 매진되어서 못 구합니다. 한편 ABT는 2018년 케네디 센터에서 올라가는 <휩트 크림>의 제일 좋은 자리가 249달러(2017년 11월 현재 약 28만원)네요. 투어 가격을 비교하면, 2014년 일본 공연 최고가가 22,000엔(2017년 11월 현재 약 22만원)이고, 2018년 홍콩 공연 최고가가 1,080 HKD(2017년 11월 현재 약 16만원)입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기존의 ‘VIP석’이라는 명칭을 넘은 ‘프레지던트석’이라는 문구를 붙인 것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측의 ‘요청’으로 ‘프레지던트석’이라는 명칭은 ‘VIP석’으로 변경되었지만, 이후 예술의전당은 VIP석이라는 명칭을 없애고 최고 등급을 R석으로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가격 책정 덕분에 ABT 내한공연은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오페라극장 객석이 그렇게 텅 빈 공연은 그때 처음 보았고, 초대권 좌석이 아닌데도 오페라극장 중앙블럭 1열이 비어있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ABT도 그런 텅 빈 객석을 두고 공연한 적이 손에 꼽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도 열과 성을 다해 공연하는 모습에 더 열심히 박수를 치게 되었어요. 하지만 망한 공연은 망한 공연... 앞으로 ABT의 내한을 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ABT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시 내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 있었던 마린스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은 큰 잡음 없이 지나갔습니다. VIP석 27만원도 적절한 가격이라고 하기 어렵고, 첫날 공연 1, 2층이 기업 단관으로 선점되는 등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프레지던트석 40만원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아니었죠. 물론 공연 내용도 훌륭했고요.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해외 발레단의 내한공연이라는 시장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넌 것 같습니다. 세계 정상급 발레단의 내한이 전무한 것은 물론, 가끔 오는 규모가 작은 발레단들의 공연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는 일이 자꾸 일어났습니다. 2014년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VIP석이 30만원이었는데, 사실상 관객이 보러 오라고 올리는 공연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CBS 창사 60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초대권을 받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비싼 티켓을 받았어!’라고 뿌듯해하게 하려는 가격 책정이었겠지요. 하지만 이걸 잘 모르고 아무 발레단이나 불러서 30만원 받으면 공연이 올라가는 줄 아는 기획사가 있었는지, 이듬해 2015년에 보스턴 발레단 내한으로 VIP석 30만원을 책정했다가 공연이 아예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한정 세계 최고 발레리나인 강수진의 존재는 이런 상황에 딱히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강수진이 나오기만 하면 표는 팔리니까, 크레디아는 강수진이 소속되어 있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2-3년 간격으로 부르며 배짱 가격을 매겼죠. 2012년 <까멜리아 레이디>(이 작품 이렇게 부르기 너무 싫은데 춘희라고 하면 일본식이고. 동백 아가씨라 할 수도 없고. ㅠㅠ)는 VIP석 25만원, 2015년 <오네긴>은 R석 28만원이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현지에서는 제일 비싼 티켓이 139유로(2017년 11월 현재 약 18만원)이고, 2015년 <오네긴> 일본 투어는 최고가가 19,000엔(2017년 11월 현재 약 19만원)이네요.  
 그래도 이 공연들에서는 최소한 작품다운 작품은 볼 수 있었죠. 2014년 인스부르크 발레단에 강수진이 객연한 <나비부인>은 20만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링크가 없어졌지만 인스부르크 현지에서 공연할 때는 최고가가 45유로(2014년 당시 약 6만5천원)였습니다. 한국 공연에서 두 번째로 싼 티켓보다 저렴한 가격입니다. 미안하지만 인스부르크 발레단의 수준도, 작품의 수준도 20만원을 받을 수준이 아니었어요. 이런 때는 그동안 공연 후기를 제대로 적지 않았던 것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나비부인>을 보고 나서의 충격과 분노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날 정도입니다. 그런데 강수진 단장은 그 작품을 국립발레단에 올리려고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안나 카레니나> 예고편이었네요. <안나 카레니나> 후기는 꼭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깁니다...
 해외 발레단 공연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책정되는 동안 국내 발레단 공연은 어땠을까요. 이 역시 다른 의미로 비정상적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예술의전당 공연 기준으로 최고가를 10~12만원선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국립발레단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최고가 8~10만원을 유지하다 올해 6월에 <스파르타쿠스> 최고가를 4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책정합니다. 뒤이어 11월의 <안나 카레니나>는 신작인데도 불과 5만원에 판매하고요. 두 공연이 각각 ‘대한민국발레축제’와 ‘평창 성공 기원 공연’으로서 국고 지원을 꽤 받았는데, 지원금을 공연 퀄리티를 높이는 데 사용하기 보다는 티켓 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보여 우려가 됩니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유니버설발레단 티켓이 비싼 것으로 보이거든요. 실질적으로는 국립발레단 티켓이 저렴한 건데요. 단기적으로 국립발레단 공연의 접근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발레 관객이 늘어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고 봐야 알겠죠.

 이런 상황 속에서 마린스키발레단이 내한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발레팬 모두가 기뻐했죠. 작품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니, 한국에서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가 작년에 국립발레단이 프롤로그 포함한 프로덕션을 올린 참인데! 그리고 왕자 비중이 적어서 우리가 기대하는 김기민의 활약을 만끽할 수 없을 텐데! 우린 <라 바야데르>가 좋아! 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5년만의 내한이라니 일단 감지덕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라... 얼마 뒤에 작품이 <백조의 호수>로 변경됩니다. 아 지금 바야데르 운운할 때가 아니구나. 꼭 사골국같은 백조의 호수를 해야 하나...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사실은 그걸 안타까워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이긴 한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단이 아니라 연해주에 있는 분관, 프리모스키가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공지되었던 김기민, 쉬클랴로프, 스코릭, 파블렌코가 아니라 김기민과 테료쉬키나, 그리고 프리모스키 무용수들이 주역을 맡는다는 겁니다. 어쩐지, 파블렌코는 노조 활동하다 찍혀서 투어에 거의 나오지도 못한다던데...
 프리모스키 극장 내한, 좋습니다. 프리모스키도 마린스키 극장인거 맞습니다. 분관이니까요. 개런티라던가 일정 등의 문제로 마린스키 본관을 부를 수 없다면 프리모스키라도 불러서 김기민 씨가 주역하는 모습을 보면 좋죠. 하지만 이 공연의 타이틀은 ‘마린스키 극장 (Primorsky Stage) 내한공연’ 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일반 관객이 프리모스키가 뭔지 어떻게 아나요? 프리마랑 비슷한 건가? 그럼 최고라는 뜻인가? 하고 넘기겠지요. 
 이 기사에 따르면 기획사 측은 “"올해부터 게르기예프가 경영 정책 일환으로 해외 공연은 마린스키 4극장이 주도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며 "애초 1극장 소속 마린스키 발레단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이번 내한공연의 무용수 구성도 게르기예프가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하네요. 와, 게르기에프 정말 너무합니다. 마린스키 본관이 미국 가서는 포킨 빌에 <라 바야데르>까지 올리고, 중국에서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올리면서, 왜 유독 한국에는 못 보내겠다는 건가요? 미국이랑은 사이도 안 좋으면서 마린스키 본관을 보내고!!! 김기민의 나라 한국에는 왜!!! 프리모스키를 보낸다는 것인가!!!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관계자님, 당장 게르기에프에게 엄중하게 따져 주십시오. 우리나라에 프리모스키를 보낼 거면 경영 정책을 지켜서 (미국은 이미 끝났고) 중국에도 프리모스키를 보내라고요!!!!!
 그리고 같은 기사에 따르면 “"군무진은 (1극장 소속) 마린스키 발레단과 (4극장 소속) 프리모스키 스테이지가 함께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마린스키 극장의 바쁜 일정으로 상세 캐스팅을 전달받지 못해 몇 명씩 나눠서 올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는데 게르기에프...약속을 안 지킨 건가요? 아래 캐스팅표에는 마린스키 본관 무용수가 김기민 테료쉬키나 외에는 안 보이는데...??? 제가 마린스키 본관 무용수를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혹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티켓 가격이... 2012년에 마린스키 본극장이 왔을 때 최고가가 27만원이었는데, 올해 프리모스키는 28만원이었습니다. 현지 가격을 비교하면, 마린스키 본관 <백조의 호수> 공연 정가는 3500~10000루블(6만6천원~19만원), 프리모스키가 100~3750루블(2천원~7만원)입니다. 중간 가격이라 할 수 있는 3층 앞자리 가격을 비교하면 프리모스키 내한공연이 16만원, 마린스키 본관이 5500루블(10만5천원), 프리모스키가 900루블(약 만7천원).
 김기민 씨도 테료쉬키나도 너무너무 좋아하기에 제일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었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2회 공연 모두 보고 싶었지만, 프리모스키 공연에 도저히 28만원은 못 내겠더라고요. 김기민과 테료쉬키나의 공연에 28만원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팔아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우겨우 자신과 타협해서 23만원짜리 좌석에서 한 번만 봤습니다. 저에게 돈이 많다고 할지라도 돈을 더 내고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럼 얼마였다면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했을까요? ABT 40만원 이후 군소 발레단도 30만원씩 받는 상황이라 적정 가격이라는 개념이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도 제 감각으로는 R석 15만원 정도면 적당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정도였다면 테-김 공연 두 번 보고, 프리모스키 주역 회차도 호기심에 한번 봤을 듯해요.

 이제야 겨우 실제 공연 얘기를 할 수가 있네요. 테료쉬키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완벽합니다. 너무 완벽해서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어요. 흑조는 레벨이 달라요. 오딜이 악의 여왕이고, 로트바르트는 그 조력자 정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매혹적이고 섹시하고 자신만만해서, 왕자는 그녀를 본 순간 이미 그녀의 마법에 넘어가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언뜻언뜻 사악할 정도로 유혹적인 미소를 지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의 야광봉을 흔들었습니다.
 김기민 씨는 날더군요. 바리에이션에서 부웅 날아오르는 것을 멍하니 보면서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하다가 이게 김기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차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서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 봤는데, 동영상 속의 모습도 대단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느낌이 한차원 더 다릅니다. ‘점프를 한다’가 아니라 그냥 날아요.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3막에 점프 하나 나오는 것마저 날아오릅니다. 지금까지 평범한 인간인 왕자가 어떻게 악마 로트바르트를 이기냐 생각했는데 이렇게 날 수 있는 왕자라면 로트바르트 따위는 맨손으로 죽일 수 있겠다고 납득해 버렸습니다.
 발레단 자체는 평이했습니다. 어차피 마린스키 본관의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고요. 주역에 시선이 가니 나머지는 제 역할만 하면 특별히 거슬릴 게 없었습니다. 다만 무대 바닥을 대체 어디서 준비한 건지 굉장히 상태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 있는 곳에서 발을 떼는 듯한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들렸어요. 일부 무용수들이 토슈즈에 송진을 너무 많이 발랐나 생각했는데, 그렇다기엔 공연 내내 그런 소리가 계속되더라고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 뭔가 뿌려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이런 상황을 잘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악은... 국내 오케스트라는 금관이 고질적인 문제라, 2막에 바람 빠진 나팔소리가 울리니 나팔수 역 하는 사람이 창피하겠다 생각되었고요... 마주르카는 왜 그렇게 빠르게 연주한 걸까요? 너무너무너무 빨라서 객석에 앉아있는 제 마음이 급해지고 초조해질 지경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찬양하는 것으로 5천자를 빽빽이 채워도 모자랄 후기에 가격이니 프리모스키니 어쩌고 저쩌고 덕지덕지 쓰자니 안타깝습니다. 프리모스키와 5년간 계약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지금 링크를 못 찾겠네요. 표가 얼마나 팔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호응도 너무 좋았고 골수 발레 팬이 아닌데도 김기민 보러 갔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여요. 이제 유명 발레단 내한은 포기했고요. 꼭 보고 싶으면 그냥 일본 공연이나 현지 가서 볼게요. 김기민 씨 주역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하겠으니 다만 가격이라도 좀 정상적인 가격으로 올려 주세요. 환영하며 출석도장 찍겠습니다.

 아래는 커튼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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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무대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6월 23일 이재우, 김지영, 변성완, 박슬기의 공연과 6월 25일 정영재, 박슬기, 변성완, 박예은의 공연을 관람했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24일 공연도 보려고 했으나 지인과 표를 교환하기로 한 것을 잊고 양도해 버리는 바람에 포기.


여러가지로 2012년의 국립발레단 공연과 비교가 되는 공연이었다.
볼쇼이와 국립이 하는 <스파르타쿠스>를 여러번 봤고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인데 이렇게 재미없었던 적은 23일 첫공이 처음이었다. 긴장감과 재미가 없는 루즈한 공연이었다. 2008년, 2012년 공연에서 국립의 기량이 볼쇼이만큼 뛰어나지는 않아도 볼쇼이 이상으로 울컥하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은 군무 덕분이었다. 온힘을 다해 춤추는 모습이 노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병사들의 열망과 겹쳐져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공연은 그런 몰입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컴퍼니 자체의 긴장감이 무뎌지지 않았나 싶다. 강수진 단장 부임 이후 군무가 꾸준히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라 바야데르>, <백조의 호수> 등 어느 작품을 비교하든 이전만 못했고 <스파르타쿠스>에서 그 정도가 심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음악. 내가 지금까지 들은 발레 음악 중 최악의 연주였다. 이 표현 너무 많이 쓰게 되는데, 어떻게 매번 최악을 갱신하는 것인지 속상하다. 스파르타쿠스 음악은 금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특히 막이 올라가자마자 나오는 크랏수스의 테마는 금관이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이끌어나가기는 커녕 푸쉬식 기운을 빠지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못할 수 있나 하는 수준이었다. 2012년 마르지오 콘티를 초청해 음악에 신경쓴 것과 큰 차이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주역 캐스팅. 2012년에 크랏수스를 추었던 김기완과 이재우는 작년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스파르타쿠스에 캐스팅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주역은 스파르타쿠스, 크랏수스, 프리기아, 예기나 네 명 모두이고 크랏수스와 예기나는 절대 조역이 아니다. 네 역할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특별한 역이다. 볼쇼이 남성 수석무용수 중 절반 정도는 스파르타쿠스도 크랏수스도 춘 적이 없다. 아무리 스타 수석 무용수라도 배역에 적합하지 않으면 역할을 맡을 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국립의 캐스팅은 스파르타쿠스가 주인공이니까 연차 쌓인 무용수들을 승진시키듯이 역할을 맡긴 것처럼 보였다.
2012년 김기완의 크랏수스가 광기어린 쾌락주의자를 훌륭하게 표현하여 딱 맞는 역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아쉽다. 스파르타쿠스도 잘 해냈겠지만, 크랏수스를 다시 추는 날을 기다려 본다.


작년 공연은 일단 몇몇 주역의 역량이 너무 부족한 점이 눈에 띄었다. 올해는 기량면에서는 발전했지만 여전히 배역에 필요한 카리스마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무대 전체적인 루즈함까지 더해져 정말 재미없는 공연이 되었다. 그나마 막공은 연주도 나아졌고 주역의 역량도 훨씬 나아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프리기아와 예기나는 워낙 개성이 다른 역이라 며칠 간격으로 주역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박슬기는 두 배역을 한번에 하는 어려움 따위 보이지 않았다. 요염하면서도 냉철하고 똑똑한 예기나의 연기는 왜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을 하지 못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너무나도 훌륭했다. 벨기에 공연 DVD 안 나오나요? 프리기아 역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 일품이었다.
정영재는 분장 없이도 스파르타쿠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잘 어울리는 베스트 캐스팅이었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라는 역할에 반드시 필요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김지영의 프리기아는 다리로 말하는 것 같았다. 고난도의 리프트와 파트너링, 그리고 의상에서 돋보이는 다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변성완은 첫날보다 마지막날 연기가 더 좋았다. 박예은은 어려운 안무를 쉬워보이도록 소화했다.
주역 개개인이 좋았던 것과 별개로 무대의 완성도는 굉장히 아쉽다.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능력이 부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적절한 디렉션이다. 아직도 2년 반이나 남았다.

아래는 커튼 콜 사진들.

이어지는 내용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오픈리허설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오픈리허설에 다녀왔습니다.
찍은 사진 중 눈에 띄는 것만 한두장씩 올려보아요. 

클래식 발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돈키호테인데,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굉장히 마음에 드는 프로덕션입니다.
고전에 충실하고 이야기의 재미를 잘 살려낸 버전이에요.
이번에도 아, 이래서 내가 돈키호테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김나은, 강민우 씨

양 첸, 데니스 자이네티노프

오혜승

강미선,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아나스타샤 데미아노바

황혜민, 간토지 오콤비얀바

안나 톨마체바, 달라르 자파로프

달라르 자파로프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홍향기, 이동탁

며칠 뒤 실제 무대에서 볼 날이 기대됩니다 ^^


[파리 오페라] <La Source> 라 수르스 (샘) 무대

2014년 12월 28일, 30일
NAÏLA: Sae Eun Park
DJÉMIL: Audric Bezard
NOUREDDA: Eve Grinsztajn
ZAËL: Axel Ibot

2014년 12월 29일
NAÏLA: Muriel Zusperreguy
DJÉMIL: Josua Hoffalt
NOUREDDA: Alice Renavand
ZAËL: Fabien Revillion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중인 박세은 씨가 언젠가 주역을 맡으면 보러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네요.
제가 후기를 쓰지 못한 사이 해가 바뀌어 벌써 두번째 주역을 맡아 <백조의 호수>도 성공적으로 공연했고요.
박세은 씨의 공연 날짜는 12월 28, 30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생소한 작품이다 보니 비교 감상을 위해 다른 주역이 공연하는 29일도 한번 더 예매해서 총 세번 관람했어요.

이 작품은 1866년 초연 당시 유행하던 이국적인 분위기(코카서스 지방과 오달리스크)에 요정의 세계가 더해져 있는 작품이에요. 원 안무는 소실되어 잊혀졌고, 쟝 기욤 바르가 새롭게 안무했습니다. 고전발레의 느낌을 주면서도 어디 다른 작품에서 본듯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독창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무대 장치도 효율적으로 사용했고요. 

작품의 줄거리는 고전발레에 흔한 이야기인 사랑에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여자와, 그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남자의 이야기예요. 코카서스의 어느 부족이 이동 중 샘 옆에 잠시 쉬어갑니다. 무리의 리더인 모즈독의 누이 누레다는 닿을 수 없는 곳에 핀 신비한 꽃을 가지고 싶어하고, 남자 주인공 제밀이 몰래 지켜보다가 나타나 꽃을 꺾어다 줍니다. 이미 누레다에게 반한 상태인 제밀은 누레다가 쓴 베일을 걷어올리는데, 모즈독이 거칠게 떼어내고 부족 남자들과 함께 거의 죽을 정도로 때려눕힌 뒤 떠납니다. 혼자 남겨져 죽어가는 제밀 앞에 샘의 요정 나일라가 나타나 목숨을 구해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즐거운 파드되. 저는 이렇게 두 사람이 잘 되는 줄 알았으나 전혀 아니었습니다.

2막은 칸의 궁전에서 시작합니다. 누레다가 칸과 결혼하기 위해 들어오고 칸은 모즈독에게 누레다의 아름다움에 상응하는 지참금을 약속합니다. 칸의 총애를 받던 오달리스크 다제는 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누레다에게 반한 칸은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때 변장을 한 엘프들과 제밀이 나타나 마법과 묘기를 부리며 모두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나일라가 신비하게 등장하자 칸은 나일라에게 마음을 빼앗겨 누레다와의 결혼을 취소해 버립니다.
장면이 바뀌어 절망하는 누레다 앞에 제밀이 나타나 구애하지만 모즈독에게 들켜서 죽음의 위기에 빠집니다. 이때 나일라가 나타나 시간을 멈추고 제밀과 누레다를 데리고 도망칩니다. 제밀은 누레다와의 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나일라를 조릅니다. 나일라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죽어갑니다.

박세은의 공연을 볼 때마다 정말 특별한 무용수라고 생각했어요. 무대 위에서 빛이 난다는 느낌. 이 무대에서도 주변을 화사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요정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가볍고 사뿐사뿐, 사랑스러운 느낌, 어딘가 인간과는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 처음에는 타고난 개성이 요정에 어울려서 그런걸까 했는데, 팔의 움직임이나 동작 하나하나가 요정같이 보이도록 연구를 많이 한 것 같았어요.
29일에 주역을 맡은 뮤리엘 주스페르기(Muriel Zusperreguy)도 굉장히 아름답고 잘하는데, 그 부분이 다르더라고요. 스와닐다나 리즈 같은, 장난스러운 아가씨로 보였어요. 요정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였던 거죠.
물론 박세은 씨는 요정같은 존재감이나 단순한 움직임 뿐만이 아니라 춤도 놀라웠어요. 나일라의 춤에는 32회전 푸에테처럼 화려한 테크닉은 없어요. 점프나 회전은 주로 남자 무용수들이 보여주고, 나일라의 춤은 어찌 보면 평범한 동작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도 스텝 하나하나와 점프 하나하나에서 힘들이지 않는 가벼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1막 솔로에서 피케 마네쥬에 이어 점프하는데, 그야말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객석의 분위기에서 동일한 감탄이 느껴졌어요. 다른 날에 비교해 관객의 반응에서 확연한 온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연기에도 호소력이 있었고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이루어 주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관객이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죠. 그런데도 '이대로 계속 살아가도 그의 사랑은 얻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이라는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이 전해졌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연은 2007년에 <고집쟁이 딸>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주역도 게스트였던 스베틀라나 룬키나였고, 작품도 애쉬튼 작품이라 발레단의 개성이나 특색은 잘 느끼지 못했었죠. 이번에 <호두까기 인형>과 <라 수르스>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남자 무용수들이 정말 잘한다는 거예요. 그거야 당연한 얘기인데... 아라베스크 하나를 해도 높은 드미포인트로 아름다운 라인이 나오고, 점프 동작 하나도 가볍고 높게 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충격을 받았어요. 솔리스트 역할인 초록색 엘프와 그의 부하 격인 파란색 엘프가 있는데, 그중에 제일 잘하는 사람이 가운데의 초록색 엘프를 하고 파란색 엘프는 조금 덜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거겠지, 하고 봤더니 다 똑같이 잘해요!!!

제밀은 남자주인공이지만 히어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호감이 가지 않았어요...나일라가 인간 행세까지 하면서 자리를 다 마련해 주었는데 누레다 앞에서 쭈뼛쭈뼛대는 모습이 너무 답답했어요 ㅠㅠ 자기 사랑 이루어야 하니까 넌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도 너무 어이없고요 ㅠㅠㅠㅠ 발레에서 이런거를 뭐하러 따지냐 싶지만, 무용수가 아무리 잘해도 커버가 안 되는 찌질함이었네요...... 제밀이 멋있었던 건 높은 곳에 피어 있는 꽃을 꺾는 듬직한 모습과 바리에이션에서 인간 같지 않게 높이높이 나는 점프... 그러나 매력이 부족한 캐릭터예요.

오히려 모즈독 역할이 인상적이었어요. 28, 30일의 모즈독은 좀더 악당같은 느낌으로, 잘 먹고 잘 살려고 누이를 칸에게 넘기는 것 같았다면 29일의 모즈독은 누이를 아끼고 부족을 염려하는 멋진 리더같은 느낌이더군요.

29일의 누레다 알리스 르나방은 어딘가 쓸쓸해보이면서도 강인해보이는 미인, 다제는 고혹적인 미인으로 각자의 역할에 잘 어울렸어요. 둘 다 무대에 얼굴이 드러난 순간 '와! 예쁘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워요. 다만 역시 캐릭터적으로 따져보면 누레다는 늘 수동적으로 모즈독-칸-제밀에게 끌려다니지만, 다제는 당돌하게 사랑을 갈구해서 호감이 가더라고요.

좋은 공연도 보고 파리 구경도 잘 하고 느긋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다녀오길 잘 했어요... 또 가고 싶네요.




커튼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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